제2절 연구 방법 및 연구 자료
2.1 연구 방법
이 책에서 사용할 연구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종합적인 연구 방법이며 둘째는 개별어휘 성립사를 연구하는 방법이다. 종합어휘사적 방법은 어느 시기의 번역어 성립과정에 대한 종합적 파악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도 있겠지만 어휘 하나하나에 대한 개별적 검토에 소홀해지기 쉽다는 부정적 측면도 함께 지니고 있다. 개별어휘사적 방법은 번역어 하나하나에 대한 정착과정을 심도 있게 밝힐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종합어휘사적 방법에 비해서는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어휘에 그칠 수밖에 없는 단점을 안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는 이 두 가지 방법을 원용하여 중국 기원 신생한자어가 근현대 한국어에 미친 영향을 살펴볼 것이다.
중국 기원 신생한자어가 한국어로 유입된 후에 해당 어휘가 정착되거나 소멸되는 과정을 효율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종합적인 연구방법을 취할 것이다. 첫째,광범위한 어휘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적절한 표본을 선정하고 이를 분석하는 방법을 취할 것이다. 이에 따라 이 책에서는 중국 근대 영한류(英漢類) 이중어사전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는 로브샤이트(1866~1869)에서 지리용어,외국국명,종교용어,정치·법률·외교용어,학문명칭 등 다섯 부류의 신생한자어를 선정할 것이다. 둘째,표본 어휘의 출현 시기를 특정하기 어려운 관계로 어휘의 정착 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는 근대 한국 다섯 종류의 영한류 이중어사전을 주자료로 삼을 것이다. 또한 중국 기원 신생한자어가 한국어로 유입되는 경로와 그것들이 정착되거나 일본계 어휘에 밀려나는 과정을 잘 파악하기 위해 중국 쪽에서는 『職方外記』,『海國圖志』,『瀛環志略』 등을,한국 쪽에서는 근대기 조선지식인들이 저술한 서학 관련 서적과 신문 등을 부자료로 삼을 것이다. 즉,로브샤이트(1866~1869)에 등재된 신생한자어를 선정한 다음에 한국 영한류 사전에서 해당 어휘의 자취를 확인함으로써 해당 어휘가 한국어로 유입되는 경로를 살펴보는 동시에 이들 어휘가 한국어 근대 어휘체계에 미친 영향을 검토할 것이다. 셋째,사회언어학이라는 시각에 입각하여 문헌을 대비·검토하는 방법을 이용할 것이다. 즉,근대기에 편찬된 영한류 이중어사전 외에 이 시기에 한중양국에서 편찬된 저술이나 발행된 신문지·잡지 등의 개화기 자료들에 출현한 어휘들을 비교·검토하여 중국어 기원 신생한자어가 한국어로 유입된 경로를 밝힐 것이다.
또한 이 책에서는 이상의 종합적 연구 방법 외에 개별어휘 성립사를 연구하는 방법도 원용할 것이다. 즉 하나의 단어를 선정하여 동아시아의 근대화라는 배경 속에 그 단어가 동아시아 나라에서 출현한 맥락을 검토하고 한국어로 유입되는 경로와 정착되는 과정을 살펴보는 방법이다. 같은 한자문화권에서 공동으로 사용되고 있는 개별 신생한자어의 역사적 계보를 유기적으로 연구함으로써 부분적으로나마 한중일 간에 이루어진 어휘간섭과정의 성격과 한국 근대어휘체계의 성립사를 연구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2.2 연구 자료
본 연구에 주자료로 사용된 로브샤이트의 『英華字典』(1866~1869)과 근대 한국 영한류 사전의 서지 사항은 다음과 같다.
2.2.1 근대 영한류 이중어사전
근대 중국과 서양의 접촉은 16세기 말 천주교 선교사들이 중국에 와서 포교활동을 하면서부터였다. 중국에 처음으로 온 선교사는 利瑪竇인데 그가 중국 대륙에 들어오기 전에 마카오에서 중국어를 공부하고 왔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서양인들이 중국에서 포교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언어라는 장애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때문에 언어 사전들이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17세기 초부터는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포교를 하면서 중국어 학습서를 편찬하는 데에도 힘썼다[5]. 그러나 본격적인 이중어사전의 등장은 馬禮遜에 의해 편찬된 중영사전부터이다. 그 후에 선교사들이 수많은 영중·중영사전을 출판하였는데 이러한 사전 편찬은 20세기에 들어서도 계속되었다. 이 연구에 사용된 영한류 이중어사전 중에 주요한 것을 들면 다음과 같다[6].
<표1> 본 연구에 이용된 중국 근대 영한류 이중어사전 서지사항 일람표
<표1> 본 연구에 이용된 중국 근대 영한류 이중어사전 서지사항 일람표-이은 도표1
<표1> 본 연구에 이용된 중국 근대 영한류 이중어사전 서지사항 일람표-이은 도표2
이들 사전에서는 중국어와 영어의 대역 관계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외래 개념을 나타내는 번역어가 고안되었고 외국인 사용자를 위하여 일부 사전에는 로마자로 중국어 발음을 표기하는 방법도 시도되었다. 사전 편찬의 목적이나 수록어의 수,용어 해석의 간결성 등에 차이가 있으나,이들 사전은 대부분 편찬 초기부터 중국 지식인이 참가했기 때문에 당시의 중국어가 상당히 정확하게 반영되어서 근대 중국어의 음운과 어휘,번역어의 성립 과정 등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 책에서 로브샤이트(1866~1869)를 연구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7].
첫째,사전의 성격과 수준이 다른 사전과 차별화 되기 때문이다.
로브샤이트의 『英華字典』은 1866년부터 1869년 사이에 총 4권의 분책(分冊)으로 간행된 2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규모의 영중사전이다. 이것은 19세기 영중사전들이 목표로 했던 최고 수준의 사전으로 수많은 영중사전들 중에서 특히 주목되는 사전이다. 이 사전에는 5만 3천여 개의 영어 표제어뿐만 아니라 60만 자가 되는 한자가 수록되어 있다. 각 등재어에는 중국어 번역어,광동어(廣東語) 주음뿐만 아니라 관련된 중국어 어휘의 주음과 예시,영어 주석 등이 포함되어 있다. 로브샤이트는 『英華字典』(제1권)의 서문에서 (1)과 같이 언급하였다. 이 서문을 통해서 우리는 로브샤이트가 그 당시 대량의 서양 신지식이 중국에 소개되었으나 신지식을 표현하는 데 사용할 만한 한문 명칭이 없었다는 현실을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는 자신이 편찬한 이 사전에 서양에서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의 신어휘를 번역 또는 해석할 것이라고 밝혔다[8].
(1)上面的資料顯示了這些字典出版以來,文明在中國已經獲得的發展,僅通過上面描述的這些情況就可以看出有必要在漢語詞匯中增加大量人們以前所不知道的詞語. 而且處在這樣一個不斷進步的時代,誰也無法豫料中國不斷前進的步伐會停在哪里. 作者認爲有必要在這本著作中飜譯和解釋那些本世紀在英語中新出現的用于表示人文科學與自然科學的大量術語. 由于在過去几年里大量新知識及新的工業部門被介紹到了中國,因此要標記這些漢語中甚至沒有對應名稱的新事物,我們要做好應對巨大而突然的變化的準備.
또한 중국인 관리인 장옥당(張玉堂)은 자신이 쓴 서문에서 『英華字典』의 번역어에 대해 (2)와 같은 높은 평가를 보냈다.
(2)其中俚語文言無不悉載前人所畧者譯之不厭其煩所贅者刪之不嫌其簡訪咨至于邇言搜羅不遺俗字重抽舊緖別出新詮博采傍稽合參互證[9].
위 글에서 볼 수 있듯이 로브샤이트는 번역어를 고안할 때 새로운 신어를 창안하기보다는 중국 고전 문헌에 있었던 단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에 중점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19세기 이후 정치·경제·교육·자연과학 전반에 걸친 분야에서 고전적 의미를 유지한 단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은 잇따라 등장한 신문물제도를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었지만 신문명과 관련된 번역어의 필요성을 인식하면서 편찬된 이 사전은 한중일 삼국 신생한자어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라고 생각된다.
둘째,중국에서 일본으로 어휘가 유입되던 시기에 편찬된 사전이기 때문이다.
沈國威(2010:26)는 언어 접촉과 어휘 교류의 입장에서 한자문화권 근대 신어 중의 동형한자어를 ‘중일유향사(中日流向詞)·일중유향사(日中流向詞)·중일호동사(中日互動詞)’ 등 세 유형으로 분류한 바 있다. 그 중에서 ‘中日流向詞’는 중국어에서 일본어로 유입된 어휘를 가리키며,그 시기는 16세기 말기부터 19세기 80년대까지로 한정되었다. 이 시기는 또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 시기는 천주교를 선교하러 온 야소회사들이 활동하였던 시기이다. 이 시기에 창안된 신생한자어들이 한역서학서와 동시대 중국학자들의 저서를 매개로 일본에 유입되어서 일본어에 수용되었다. 예컨대 “基督,天主,幾何,病院,地球,熱帶,溫帶,赤道”와 같은 基督敎·天文學·幾何學·地理學 등 분야의 어휘가 바로 이 시기에 일본으로 유입되었다. 이 어휘들은 일본 난학자(蘭學者)들에게 받아들여지고 네덜란드 서적을 번역하는 데 많이 이용되었다. 이 시기에 도쿠가와 막부[에도 막부]의 쇄국 정책 때문에 대외무역과 해외 정보의 유입은 제한을 받았다. 그러나 서적에 대해서 1720년에 천주교 서적 이외의 양서를 수입해도 된다는 양서수입해금 정책으로 쇄국정책에도 불구하고 문화적으로는 진일보하였다. 이리하여 일본으로 수입된 중국 한역서학서들이 일본 학자들 간에 자유로이 유통 되고 이 시기에 중국에서 창안한 한자 어휘가 일본어에 흡수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두 번째 시기는 1807년 개신교 선교사 馬禮遜이 중국 광주(廣州) 항구에 상륙할 때부터이다. 1859년 일본이 개항한 후에 외국 서적의 입수가 해제됨에 따라 중국 서학 번역물과 英華字典 등의 서적이 대량 일본으로 유입되었다. 이와 동시에 개신교 선교사들이 창안한 신어나 번역어들도 일본어 어휘체계에 수용되었다. 이 시기에 “銀行,保險,資本,電氣,電報,化學,植物學,鉛筆,陰極,陽極,炎症” 및 대량의 수학 용어가 일본으로 유입되었다. 沈國威(2010:26)에 따르면 19세기 80년대 중기 이후 일본에서 인문·과학 분야의 근대어휘체계가 성립되었다고 한다. 청일전쟁을 분수령으로 하여 그 동안 서학동점(西學東漸)과 서구 문명을 섭취하려는 근대화 과정 속에서 일본에 대한 중국의 문화적 우위는 서서히 없어지고 마침내는 역전되고 말았다. 이렇게 하여 19세기 말기부터 중국이 일본으로 새로운 문화를 수출하는 일은 중단되었다.
이상의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본 것처럼 적어도 로브샤이트(1866~1869)가 출판되기 전까지 중국은 일방적으로 일본으로 문화 수출의 역할을 하였다. 바꿔 말하면 로브샤이트(1866~1869)에 등재된 신생한자어들은 일본어의 영향을 받지 않았고 이들 신생한자어들을 중국어 기원 신생한자어로 간주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역시 이 책에서 이 사전을 연구 주자료로 삼은 이유 중의 하나이다.
셋째,『英華字典』(1866~1869)이 일본의 사전 편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沈國威(2009:84)가 밝힌 바와 같이 로브샤이트와 교회의 갈등을 빚고 있음으로 인해 이 사전은 중국 대륙에서 발간되지 못하고 홍콩의 The Daily Press에서 처음으로 출판되었다. 이 사전은 출판된 후에 일본에 의해 많이 구입되고 일본의 근대 영일사전의 편찬과 번역어의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沈國威(2012:199~200,이한섭 외역)는 일본에서 출간된 『附音揷圖英和字彙』(1873)를 『英華字典』의 번역어의 대비를 통해 이 사전은 로브샤이트(1866~1869)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지적하며,『英華字典』 번역어가 일본의 영향을 받지 않고 로브샤이트에 의해 독자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결론을 내린다. 실은 이 점에 대해서 일찍이 일본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어왔는데 모리오카 켄지[森岡健二]는 1969년에 벌써 근대 번역어 관점에서 이 사전을 상세히 논한 바가 있다. 또한 1879년 츠다 센[津田仙] 등에 의해 로브샤이트의 『英華字典』을 충실하게 번역한 『英華和譯字典』,1884년 이노우에테츠지로[井上哲次郎]에 의해 편찬된 增補版 『英華字典』 등이 출판되었다는 사실은 로브샤이트의 『英華字典』이 일본어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방증(傍證)이 될 수도 있다. 이는 역시 필자가 로브샤이트의 『英華字典』을 주요 연구 자료로 삼은 이유 중의 하나이다.
2.2.2 한국의 이중어사전
근대 한국 영한류 이중어사전에 등재된 신생한자어의 양상을 검토함으로써 중국 기원 신생한자어가 한국 근현대 어휘체계에 미친 영향을 살펴볼 것이다. 여기서 이용될 한국 근대 영한류 사전은 언더우드(H.G. Underwood)(1890),소콧(Scott)(1891),존스(Jones)(1914),게일(J. S. Gale)(1924),元漢慶(H.H. Underwood)(1925) 등이다. 이들 사전의 서지적 사항은 황호덕·이상현(2012:43~155)을 토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한영뎐』(A Concise Dictionary of the Korean Language)은 언더우드가 1890년에 발행한 최초의 한영사전과 영한사전이다. 이 사전은 요꼬하마의 Kelly&walsh 출판사에서 나오고 같은 곳의 세이시분샤(Seishi Bunsha)에서 인쇄되었다. 이 사전의 제1부는 한영부이고 제2부는 영한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사전의 서문에서 밝혔듯이 사전 편찬을 준비하는 기간이 5년여 소요되어 1890년에 이르러서야 포겟판과 학생판이라는 2가지 형태로 출판되었다[10]. 게일의 도움을 받았다고 되어 있는 제1부 한영사전의 표제어 총수는 약 4910개이며,자모의 배열 순서에 있어서는『한불뎐』(1880)이 가장 중요한 참고 문헌이 되었다. 제2부의 영한사전의 표제어는 약 6702개이며 육영공원(育英公院)(the Royal Korean University)의 헐버트의 도움을 받았다.
스콧의 영한사전(English-Corean Dictionary)은 1891년에 한국영국교회출판부(Corea:church of England Mission press)에서 출판되었다. 이것은 언더우드(1890)에 이어 두 번째로 나온 영한사전이다. 언더우드(1890)와 비교해 볼 때 훨씬 더 많은 영어 표제어가 실려 있고 표제어의 다의적 의미를 보다 많이 풀이하고 있지만 언더우드(1890)에 비하면 품사적인 측면에서 대등한 대역관계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영한뎐(An English-Korean Dictionary)』은 1914년 존스가 편찬한 사전으로서 언더우드(1890)와 스콧(1891) 이어 세 번째로 출판된 영한사전이다. 이 사전은 한일강제병합 이후 최초로 나온 영한사전으로서 일본 도쿄의 교문관(敎文館)에서 출판했고 한국선교서회가 사전의 판매를 담당하였다. 이 사전의 서문에서 밝혔듯이 “영어로 된 학술,철학,종교,법률,교육 그리고 보다 일상적인 몇몇 용어에 한국어 또는 한자 유래의 한국어(Sinico-Korean) 대응어를 제시하려 시도”했다고 사전 편찬의 목적을 명시했다. 따라서 이 사전에는 근대 외래한자어들을 다수 수록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또한 존스의 서문을 보면 리델 신부의 『한불뎐』과 게일 박사의 『한영뎐』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였다. 이와 동시에 서문에서는 이 사전에 등재된 단어 중 다수는 새롭고 생소한 것이어서 일반 한국인에게는 굉장히 낯설며 일부 학자 계층에게만 알려진 수준이라는 점도 밝혔다.
『三千字典』(Present day English-Korean:Three Thousand Words)은 게일에 의해 편찬되고 한국 근대시기에 네 번째로 나온 영한사전이다. 이 사전은 1924년에 경성(京城) 조선야소교서회에서 발행하였다. 이 사전의 영문 제명을 보면 ‘사전(Dictionary)’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는 이 책은 사전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어휘 목록집에 더 가깝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사전에 수록된 어휘 수는 약 3000개이며 게일은 “한국어의 일부가 되어 있는 새롭고 보다 근대적인 용어에 대한 지식을 얻는 데 도움을 주고자했다”라고 사전을 소개하는 글에서 사전의 편찬 목적을 명시하였다. 표제어 제시와 의미 기술 방법에는 영어와 한국어를 일대일 대응 관계 속에서 제시하고 있으며 해석부에 나온 한국어에 대한 설명이나 다의적 맥락이 제시되어 있지는 않다.
『英鮮字典』은 元漢慶에 의해 편찬된 사전으로서 1925년에 조선야소교서회에서 출판되었다. 이사전은 앞선 영한사전의 계보를 이으며 한국 근대시기에 다섯 번째로 출판된 영한사전으로서 약 15,000개의 영어표제어를 한국어로 풀이했다. 元漢慶(1925)의 편찬과 관련된 기록에서 이 사전에 실려 있는 “어휘의 정의가 어색한 항목이 있을 수 있겠으나,한국어가 현재 급격한 유동의 시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히면서 사전의 편찬 작업에는 “대여섯 가지의 일어와 중어 사전,중국과 일본의 신어 목록을 참조하였다”고 언급하였다[11].
상기 다섯 종의 영한사전에 수록된 어휘수가 다르고 표제어로 등재시킨 영어 단어들 자체도 서로 상당히 달랐다는 것은 사전의 편찬 목적과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상기 사전에 편자의 신분이나 출판사의 종류,사전의 편찬 경위를 밝힌 서문을 살펴보면 해당 사전의 편찬목적이 명백해진다. 즉,황호덕·이상현(2012:241)에서 밝혔듯이 언더우드(1890)와 소콧(1891)은 선교를 위한 일상회화용 영한사전에 근접한 것이고 존스(1914)는 서구어 학술용어에 대한 아직 관습화되어 있지는 못했던 근대외래 한자어를 실험적으로 탐색한 사전이었다. 게일(1924)은 당시 한국에서 사회화,관습화가 된 유용한 신어들을 선정하여 편찬된 어휘집이며 元漢慶(1925)은 일상,선교,학술적 목적이 망라된 영한사전의 집대성이라고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시기에 다른 목적에 따라 발간된 사전들인 만큼 동일한 영어 표제어임에도 대역관계를 구성하는 한국어는 결코 동일하지 않다. 개화기에서 식민지시기까지 발행된 상기 영한사전에서 동일한 영어 표제어에 대해 한국어로 풀이된 설명들을 통해 근대 한국어의 변모나 영한 대역관계의 변천을 일목요연하게 살필 수가 있다.